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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리아 땅의 한 山
글쓴이 김장수 E-mail mj2528@naver.com 번호 606
날짜 2018-03-20 조회수 385 추천수 24

 

아브라함의 모리아 땅의 한 산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고 자신의 결단을 실행하는 장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장소, 기적을 눈으로 확인하는 현장이었다.

아브라함 부부는 100세에 얻은 아들을 금이야 옥이야 하며 진자리 마른자리 보살피며 키우지 않았을까 싶다. 자신을 닮은 듬직한 아들이 무지무지하게 믿음직하고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아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 기대도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초월하지 않았을까 싶다. 100세에 얻은 아들에 대한 부모의 기쁨과 그 아들에 대한 장밋빛 소망을 어찌 짐작인들 할 수 있으랴.

100세란 나이가 단순히 생물학적 숫자만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100세라는 의미는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가능성 제로라는 의미다. 이 사실을 아브라함을 알고 있었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로마서 419)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선물로 주셨다. 그런데 100세에 얻은 아들로 인한 기쁨과 행복이 무러익어 갈 즈음 하나님은 난데없이 그 아들을 번제물로 드릴 것을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스스로에게 자문하며 의구심을 품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면 하나님께 반문했을 수도 있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부모의 입장으로는 충분히 그렇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짐작일뿐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 믿음의 조상으로서의 진면목을 모리아 땅의 한 산에서 보여준다. 여기서부터 아브라함의 아브라함다움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장성한 아들을 번제물로 드리기 위해 그 아들과 함께 모리아 땅의 한 산으로 오르는 아비의 심정, 그 순간은 어쩌면 100세에 아들을 얻은 기쁨보다 더 고통이 컸을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하나님께 제사드리려 가는 길이 즐겁고 흥이 났을지도 모른다. 콧노래를 부르며 아버지를 따라 모리아 땅의 한 산으로 향하는 아들과 천근만근 무거움 짐을 마음에 지고 산으로 산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아버지, 삼일 길이 100년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번제단 장소가 눈앞에 보일 때쯤 아브라함은 아비의 마지막 심장마져 비수로 찔러 부르르 떨게 하는 한 마디를 듣게 된다. 아들 왈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 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창세기 227)

아버지가 번제를 드리러 가는 길에 동행한 아들은 영문도 모른 채 삼일 길을 따라 갔을 것이다. 번제 드릴 장소가 임박하자 아들도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평소와는 다른 아버지의 모습과 번제에 필요한 양을 준비하지 않은 것이 못내 아들은 궁금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에게 한 마디 툭 던졌을 것이다.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 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은 차마 네가 번제물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가슴을 후벼파는 고통을 속으로 삭이고 아브라함다운 답변을 한다. “내 아들아 번제 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22:8) 이 말을 하는 아브라함의 심정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태복음 2746) 라는 예수님의 고통에 버금가는 아픔을 담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 너머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기에 이렇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비의 심정으로는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순간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하나님의 가혹한, 수용할 수 없는 시험이라고 탄식하며 외면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한다.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 자신의 것을 포기한다. 놀랍게도 모리아 땅의 한 산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테스트를 통과하고 여호와 이레의 복을 받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에게도 각자의 모리아 땅의 한 산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모리아 땅의 한 산을 허락하시고 그 산에 오르기를 원하신다. 빈손을 원하시지는 않으신다. 아브라함에게는 100세에 얻은 아들이었다면 나에게, 우리에게는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그 산이 순종의 장소, 실행의 장소, 여호와 이레의 장소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가 대책 없을까 봐, 우왕좌왕할까 봐, 낙심하고 절망할까 봐, 복을 놓쳐 버릴까 봐 아브라함을 모델로 보여주셨다. 아브라함처럼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고유하고 독특한, 아주 특별한 모리아 땅의 한 산을 지명하고 그곳으로 부르신다. 은혜와 복을 주시려고 모리아 땅의 한 산으로 부르시는 것이다. 그리고 에베소서 320절의 말씀처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복을 주신다. 다만 테스트(시험)를 하신다. 아브라함을 모리아 땅의 한 산으로 부르시듯 우리를 삶의 여정 어느 한 산으로 부르시고 네게 가장 귀한 것을 들고 오라고 하신다.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 애지중지 하는 것, 10, 20, 30년 아니면 평생을 피땀 흘려 손에 쥔 그 어떤 것, 오직 하나밖에 없는 그 무엇 등을 바치라고 할 때가 있다. 그 이유가 창221절에 나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무나 부르지 않으신다. 택한 백성을 부르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될 때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약속만을 붙들어야 한다. 하나님은 절대로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요구를 하지 않으신다. 또한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험을 출제하지도 않으신다. 수준에 맞는 문제, 풀 수 있는 문제를 출제하시고 문제를 풀도록 하신다. 정답을 푼(테스트를 통과한) 사람들에게는 여호와 이레의 복을 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누구보다도 잘 아셨다. 그 어떤 시험을 치르더라도 능히 패스할 실력이 아브라함에게 있음을 아셨다. 시험의 난이도와 답은 물론 아브라함이 어떤 답안지를 제출할지도 아셨다. 이에 반응하는 아브라함 또한 평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답 인생을 살았기에 시험 앞에 잠시 고뇌하고 번민하기는 했겠지만 주저하지 않고 정답을(아들을 번제물로 드리는 것) 쓸 수 있었고 여호와 이레의 복을 받을 수 있었다고 본다.

종종 나의 모리아 땅의 한 산으로 부르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그 부르심에 아브라함처럼 반응하기에는 믿음의 수준이나 결연한 의지, 용기, 삶의 내용이 턱없이 부족하다. 다행인 것은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성령님으로 하여금 도와주시도록 역사하고 계신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나의 모리아 땅의 한 산에서 여호와 이레의 복을 경험하게 하신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시험은 특권이자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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