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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 목사의 간증, 개척
글쓴이 김수명 E-mail tardes@naver.com 번호 80
날짜 2014-03-23 조회수 1478 추천수 69

“복있는 사람은”(김양재목사)

1951년 대구에서 태어남. 유교집안에 시집와 남편 구원을 위해 교회 화장실 청소하시던 어머니에게서 신앙유산을 물려받음.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 전공, 서울예고, 총신대 강사를 지냄. 백석대 신학대학원(M.Div) 졸업. 한국 독립교회 및 선교단체 연합회에서 안수. 결혼하기 전까지 교회반주자로 10여년동안 봉사.

유력한 남편을 만나 결혼했으나 연주생활도 할 수 없고 하루 종인 갇혀 지내야 하는 고된 시집살일 끝에 마음의 병뿐만 아니라 육신의 병도 앓음. 결혼생활 5년 만에 이혼을 결심하고 가출했으나 기도원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삶이 변화됨.

말씀대로 이 세상에 오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애를 온몸으로 개달으면서 교양과 엘리트 의식으로 꽁꽁 얽매여 있던 삶을 벗어던지고 영혼 구원에 헌신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남편의 죽음(급성간암)을 계기로 평신도 큐티 사역자의 길로 들어섰으며, 삶의 수치스런 밑바닥까지 함께 나누고 고백하는 독특한 나눔으로 김양재식 말씀 마니아를 많이 만들어 냈다.

말씀대로 절절이 들어맞는 에스겔 선지자의 삶을 소망하며 '우리들교회(www.woori.cc.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952-1 휘문고등학교內)'개척이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사역 중에 있다.

이 책은 살아있는 말씀사역자로 소문난 김양재 목사의 큐티(Quite Time,말씀묵상) 마인드와 큐티(QT) 양육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존의 큐티 책들이 노하우에 집중해 있다면, 이 책은 큐티 마인드에 집중하고 있다. 바로 큐티는 말씀을 통해 나의 죄를 보는 것이라는 것. 큐티를 하면 왜 삶이 변하고 교회가 부흥하는지를, 개척 1년 만에 출석교인 600여명으로 부흥한 김양재 목사님의 큐티 이야기와 날마다 놀라운 간증이 넘쳐나는 ‘우리들교회’ 식구들의 이야기로 감칠맛 나게 풀었다. 이 책을 통해 말씀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움직여 가는지를 똑똑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설교를 들어도 변화가 없고, 날마다 새로운 영성 훈련 프로그램 쫒아 다니기에 지친 성도들에게, 형식적인 구역 모임과 감격이 없는 예배와 행함이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운동의 필요성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1. 말씀 묵상하는 사람은 복(福) 있는 사람이다.

►말씀대로 믿는다.

오늘도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결혼생활 10년 넘어 신랑의 병원과 떨어진 살림집에서 겨우 자유(自由) 시간을 가졌다. 병원 위층에 살 때는 포로(捕虜) 신세였다. 아합 왕궁 옆의 포도원주인 나봇은 사소한 일에도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했다. 나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했다.

“이세벨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함을 듣고 아합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그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를 싫어하던 포도원을 취하소서 나봇이 살아 있지 아니하고 죽었나이다 아합이 나봇의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왕상21:15~16)

결혼이라는 밧모 섬에 갇혔더니 귓가에 말씀의 나팔소리가 들렸다. 성경이 깨달아지는 놀라움을 가졌다. 이세벨의 팔자(친정아버지도 왕, 시아버지도 왕, 남편도 왕, 딸은 왕비...)는 결국 멸망한다. 우리의 환난은 환경이 어려워 오는 게 아니다. 환경은 변함없는데 하나님의 위로를 받지 못하는 게 환난이다. 예수 믿어도 살기 힘들다고 이혼하고, 자살하는 것은 말씀이 들리지 않아서이다. 교회 다녀도 내 삶을 치료해줄 사람이 없고, 내게 구원의 말씀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다. 말씀으로 회복되지 않으면 내가 지금까지 믿었던 것은 가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고후1:5~6)

우리의 환난도 위로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救援)을 위함이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당한 환난(患難)이 내 전공과목이 되어 남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환난을 주신 이유다. 내 고난을 증거함이 말씀 전하는 좋은 방법이다.


고난을 통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고난(苦難)이 오면 그 사람이 예수님께 양육받고 있다는 신호(信號)임을 안다. 고난을 통해 신앙이 성장하고 영적 유익이 옴을 안다. 청년부 박00형제의 간증=13년간 미국공부로 보스턴 오페라단 가수로, 찬양대 지휘자로 섬기던 중 군입대차 한국에 왔다. 군에서 뇌의 해마손상으로 목소리가 안 나오는 사고를 당했다. 영동세브란스 병원에서 회복 불가능의 판정을 받았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13:1~2)

불치병 판정을 받은 그 주일의 토요일 군법회의에서 내 삶을 깡그리 짓밟아 놓은 사람들을 죽이고 싶었다.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롬13:3)

하나님의 권위를 선하게 사용하기로 했다. 말씀 적용으로 하나님의 권위(權威)에 순복하기로 했다. 군법회의에서 저에게 해를 입힌 사람들을 용서하겠다고 증언했다. 형제의 증언에 교회 안은 술렁였다. 갑자기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치듯 “성악하는 사람이 목소리를 잃었으니 쓰레기 같은 인생 뭘 하겠습니까...?”. 형제는 울부짖었다. 꺼이꺼이 울었다. “저는 죄인입니다....“ 여기저기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예배드릴 때.... 찬양을 너무나 하고 싶었어요...“라며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를 불안한 쇳소리가 나오더니 목소리가 터져서 우렁찬 찬양이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롬13:4)

오늘날 권위를 부정하는 시대에 성도는 자기 위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권위주의(權威主義)는 나쁘지만, 있어야 할 권위(權威)마저 부정함은 큰 잘못이다. 하나님은 비판(批判)하지 말고, 분별(分別)하라고 하셨다. 위 권세를 비판하고 반항하는 것은 죄성이다. 분별력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사랑의 마음이 없는 비판은 사람을 포용하지 못한다. 사랑과 섬김으로 대하는 것은 내 힘으로 안되고 말씀 앞에 순종할 때 가능하다.438장(내영혼이 은총입어 죄짐 벗고보니 슬픔많은 이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어떤 사건에서도 하나님이 옳으심을 100% 믿는다.

이혜옥 자매(37)의 간증=암이 다른 데로 전이되고 있었다.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자족하는 마음 있으면 경건에 큰 이익이 된다. 주일 때마다 등산을 즐기던 중 대장암 선고를 받았다. “날마다 두레박을 내리는 여자”라는 인터넷 글을 나누며 인공장루를 달고 몸속으로 관을 넣어 소변을 길어내는 자신의 처지를 표현한 말이다. 여자의 아픔을 고백한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딤전6:3)

죄인됨을 깨닫고 사랑의 힘으로 잘 헤쳐 나가리라는 믿음을 가졌다.

“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에 이르러 ...그가 안으로 들어가서...”(겔41:1~3)


제사상 에스겔은 성소(聖所)에는 들어갈 수 있지만, 지성소(至聖所)에는 대제사장만 들어가는데 에스겔을 인도했던 천사만 들어갔다. 에스겔은 천사가 전하는 지성소의 외양을 듣고 보았다. 보지 못했던 내부 깊숙한 곳의 치부를 들여다보게 하셨다. 이 상황에서 평안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았다.


“...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골1:22)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를 거룩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열망이다. 간증한 지 일주일만에 배뇨기능이 돌아와서 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볼일을 해결하게 되었다.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circumcision)니라”(골2:11)

우리를 육에서 해방시키셨다. 사람마다 벗게 되는 수준의 차이는 있다. 99억원 부도에는 안 나오더니, 100억 부도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분이 있듯이, H/W의식과 전통과 율법이 아니라 S/W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육을 벗고 속을 드러내게 된다. 주안에서 날마다 벗어야 한다. 날마다 벗는 것이 그리스도의 할례이다.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골1:5)

“하늘에 쌓아둔“이란 미래를 위해서 계속 삶을 준비한다는 뜻이다. 말씀 듣지 않으면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참된 복음과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 소망이 생긴다. 소망이라는 확실한 기초에 기반을 둔 믿음과 사랑이 진짜인 것이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bread)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찌니라”(신8:3~6)

복의 내용은 가난하고, 애통하고, 핍박받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병들고 무시당하는 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누구보다 천국을 누리신 분이다. 처음에는 병 고치는 예수님이 좋아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해도 갈수록 예수님의 고난 인생을 사모하게 되는 것이 믿음의 성숙이다. 십자가의 고난 없이는 죄사함의 구원도 부활도 없듯이 내 인생의 고난 없이는 지금의 내가 없기에 D 나는 내 고난은 자랑한다.


육의 성전(聖殿)이 무너져야 영의 성전이 세워짐을 믿는다.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요9:35)

예수는 날 때부터 소경인 자를 눈뜨게 했지만, 사람들은 자꾸 다시 눈을 감으라고, 거짓증거를 하라고 한다. 예수를 증거하는 소경은 결국 사람들에게 쫓겨난다. 예수는 쫓겨난 소경을 만나러 오신다. 바리새임의 시달림을 받고 쫓겨나서야 달려오시는 예수님. 못보던 소경은 눈을 떴는데 두 눈이 다 뜬 사람은 두 눈이 멀 수도 있다. 영적 소경이란 것을 모를 수 있는 생활들. 내가 소경인 것을 모를 수 있는 생활들. 내가 소경인 것을 모를 때 주님은 고난을 통해서 우릴 부르시고 말씀하신다. 소경이 쫓겨나서야 찾아오신 주님은 고난의 때에 찾아오신다.


“...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요9:39)

내가 영적 소경인 것을 모르고 좋아하니까 주님은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부르시고 말씀하신다. 쫓겨나고 망하고 버림받는 일을 통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신다.


“은혜를 베풀며 꾸이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공의로 하리로다”(시112:5)

술 집 하다가 망한 윤집사는 떡볶이 장사로 TV<인간극장>에 출연하다. 율법적인 설교 인 ‘내가 할 수 있다‘ 보다 복음적인 설교 인 ’난 아무 것도 할 수없다‘를 가르쳐야 한다. 죽어본 경험이 없으면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3:1~2)

직원 백여명의 사장에서 떡볶이 포장마차의 주인으로, 정원 딸린 집에서 단칸방 살림으로 내려왔지만 소망의 줄을 붙들 때 주님 영광을 증거하게 되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肉身)의 정욕과 안목(眼目)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2:16). 정욕이 무너지고 튼튼한 집을 세우게 되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3:3~4)

내가 밑으로 내려가 보는 것. 비천하게 사는 것은 축복이다. 내려갈수록 예수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예수님의 말씀이 들리고, 예수님이 나를 새롭게 지켜주시기 때문이다.


회복의 하나님을 믿는다.

치과의사인 장집사는 주식이 급락해서 폭삭 망했다. 60평 아파트까지 잃고 원룸 오피스텔에서 네식구가 살고 있다. “하나님이 집사님을 너무 사랑하시나 봐요...“. ‘여호와삼마(여호와는 거기 계신다)’의 말씀(에스겔48:35)을 받았다.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시기에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는 응답받았다. 아침마다 불안한 마음이 있지만 말씀을 보고 기도하며 이기는 삶을 살고 있다.


“그는 흉한 소식을 두려워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시112:7)

복음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찾게 하시려고 육적으로 오는 흉한 소식일 수 있다. 우리는 눈만 뜨면 돈, 건강 등 두려운 마음이 든다. 말씀을 묵상해도 적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두렵다. 두려움의 배후에는 욕심, 변명, 게으름이 있다. 장집사의 감사(感謝)는 주식투자와 빚 문제의 두 가지에 신경 쓴다고 힘들었는데, 이젠 빚 문제 하나만 신경 쓰면 되니까 참 감사하다고 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

병원 살림집에서 QT할 때, 무직남편과 이혼위기의 미장원 집사는 세상풍파에 상처받은 마음뿐이었는데, 병원 원장 사모인 나의 관심에 무척 감격했다. 시련 주시는 은혜는 체험하고 기도한다. 세상가치관에 주눅 들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남편과 사랑하는 삶을 살기로 했고 미장원을 선교지로 삼았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수11:23)

여호수아는 내 영적 전쟁임을 알았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신고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과 그 땅을 단번에 취하니라 ”(수10:42)

시련주심을 은혜로 알고 기도로 감사했다. 부자동네 ‘스카치 데얼리‘에 일자리를 얻어서 갈렙과 같은 내기업의 분깃을 주실 것을 감사했다. 죽어있는 이민사회의 영혼을 깨워야 한다면서 미장원을 찾던 권사님이 미국이민을 권유했다. 취직된 미용실의 사장은 집사님을 한국신문에 광고해줘서 기쁨으로 미국 이민생활의 영주권 등을 염려하며 여호수아의 자기 욕심이 아이성 싸움을 패배케 하고 만나가 그치고 아간의 욕심으로 형벌받는 사건들을 보고 깨달았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골1:6)

감옥에서도 온천하의 열매 맺는 소문이 퍼져 기뻐한 바울처럼 ‘한사람’이 내게 있다면 우리는 이미 사역자의 길을 걷고 있다. '한사람'이 가슴에 있어야 한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찌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약1:9~10)

남편도 금형기술자로 고액연봉 10%수준에 있고, 아이들은 뉴저지 사립고교에, 근처에 집을 살 정도로 안정된 생활 중이다. 모든 축복의 시작은 주님말씀에 한가지씩이라도 순종하는 것이다.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강건함을 갖게 된 것은 오직 순종함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신 능력을 체험한다.


(2)말씀대로 산다.

큐티의 꽃은 적용(適用.application)이다.

모임에서 눈물 흘리던 한 자매가 ‘이단(異端)’에 빠졌다. 말씀을 알아도 그럴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삶에 적용은 하지 않고 지식적으로 말씀을 읽고 성경공부 진도만 따진다면 그렇게 될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2:13)

좋은 설교듣고 은혜받으면 나의 믿음이 그런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말씀을 깨닫고 나누어도 막상 내삶에 적용하지 않으면 도루묵이다. 말씀 읽으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성품에 합당한 사람으로 나를 맞춰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말씀으로 기도하며 적용하는 삶이 없다면 QT도 율법적 습관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말씀 앞에 100% 순종한다.

우는 목소리로 전화하는 앳띤 20대의 임신소식이 전해졌다. 결혼 약속한 남자가 결혼하지 않겠단다. 고난의 때에 말씀 듣고 순종하니까 연락을 끊었다가 상대남자를 돌이켜서 결혼도 시켜주었다.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의 붙드신바 되었으며 내 어미 배에서 주의 취하여 내신바 되었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시71:6)

산부인과 남편이 죽음직전에 낙태 수술한 것을 회개했다고 증거한 나는 여기서 깨달음을 얻었다. 목회자 사모님이 원장이시고 남편 목사님도 의사인 “낙태수술을 안한다는 은혜산부인과” 이야기를 들었다.

“아름답고 묘한 ...”(렘6:2)

겉모양은 아름답고 교양 있어 보이고, 믿는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은 데 믿는 것 같고 입으로는 말씀을 말하지만 행위는 따르지 않는 사람들. 예수님을 믿고 새 생명으로 거듭났지만 그 생명의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렘7:4~5)

거룩해지는 것은 내 ‘삶에서’ 길과 행위를 올바르게 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삿1:12)

강집사의 딸이 여중 때 아빠를 잃고 방황하다가 사고를 냈다. 멀대같은 남자친구를 교회로 데려왔다. “다희야, 학생신분으로 공보함은 기럇세벨을 쳐부수는 것이란다”. 임신한 딸에게 시부모쪽과 남자쪽 식구들을 아이를 떼란다. 공고를 다니는 남자아이는 모의고사 성적이 너무 형편없어서 걱정이었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1:30~31)

나는 낙태를 말렸다. 구원은 생명에서 나온다고 하면서 이 아이로 인해 다희의 긴 방황이 끝날 것이라고 했다. 술, 담배와 우울증 약까지 먹는 다희는 엄마를 죽이려까지 했다. 본드를 흡입하기도 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학1:8)

솔로몬 때의 성전은 레바논 백향목으로 지었지만, 학개 선지자는 그럴 여건이 못 되었다. 올라가기 힘든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려고 결정만 해도 목주기로 작정하고 계시다는 것을 강조한다. 집안이 망하고 자식이 속 썩이는 지금의 내 고난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한 가장 좋은 나무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9:23)

결혼을 반대하던 다희네 시댁은 부모님만 참석하고 교회청년부들이 특송을 하니 풍성한 은혜의 잔치로 인해 시부모님은 어리둥절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가 준하다. 예쁜 준하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게 했다. 죽음의 길에서도 구원의 길을 내신 하나님이시다.


말씀 앞에 부끄러움을 내려놓는다.

이 글을 읽었다. “6.25때 첫 남편은 잃고 재혼하여 난 딸이 ‘나‘다. 아버지는 교통사고, 어머니는 배다른 딸 둘이 부끄러웠다. 자기 자랑만 하는 교회에 실망하던 때 새벽기도회에서 깨달았다. 주인집 아주머니를 통한 말씀에 감사했고 따뜻한 손길들을 기억했다. 원수가 된 언니에게도 꽃을 선물하고 화해했다”. 눅15장의 ’탕자비유’적용이다. 모범적인 맏아들, 둘째아들 탕자와 기뻐한 아버지. 내가 바로 아버지의 마음을 외면했던 자라는 것을 고백한다. 가족을 용서하지 못한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니 숨겨진 부끄러움을 보게 하셨다. 똑같은 콩가루 집안이라도, 시아버지와 동침한 다말은 예수님의 조상이 되고, 친아버지와 통침한 의 두 딸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롬9:33)
지체들에게 내 부끄러움을 나눌 때 나 자신도 죄에서 벗어날 수 있고 고난에 빠진 지체를 도울 수도 있다.


살아 있을 때 죄가 드러나는 것이 축복이다. atonement(속죄.화해.보상)

며느리로 인정받지 못하는 김집사는, 경기신문에 실린 아버지의 기사 “수석장로 김00씨 간통죄로 고소 당해!!”. 결혼초기부터 여자를 바꿔가며 외도하던 아버지. 예수믿고 술.담배.여자를 끊고 장로가 되어 간증까지 하러 다니던 아버지가 어머니를 배신하고 하나님 앞에 범죄했다. 그 여자의 남편이 아버지를 고소했다. 합의금으로 땅과 재산을 전부 잃었다. 고향이 발칵 뒤집히고 부끄러워서 고향을 떠나 서울로 이사했다. 다른 교회에 간증까지 다닌 아버지. 서울의 작은 교회에서 새벽에 교회문을 열러 가다가 쓰러졌다.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5:20)

율법이 오기 전에는 죄를 모른다. 택함을 받은 사람은 어쩌다 실수를 해도 드러나고 주목받는다. 과거의 죄는 우리를 은혜롭게 한다. 과거의 죄로 인해 평생을 풍성하게 사역한 베드로와 사도 바울에게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스데반을 쳐죽인 바울이기에 나같은 죄인도 용서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은혜를 받았을 것이다. 바울은 처음에 자신을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고전15:9)라고 했다가, 조금 지나서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엡3:8)라고 했다가, 죽을 때에는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라고 고백하지 않았는가.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눅22:61~62)

이 일을 생각하며 베드로는 오순절 이후 자신의 설교로 3천명이 전도되었어도 감히 자신이 한 것이라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주님이 시키시려고 겸손하게 만드신 것이다. 내 의(義)가 아니라 내 죄(罪)를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다.


100% 죄인임을 고백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2~13)

예전 교회에서 아름다운 부부로 손꼽혔다. 남들은 그런줄 알았지만... 정말 여자문제로 속썩이는 남편을 이젠 포기하고 싶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의 집착과 중독에 속았다. 정분난 젊은 아가씨를 만나서 “아가씨도 예수 믿으세요”라고 하니 그만 자신이 잘못했단다. 여자중독인 최사장은 또 임신까지 시켰다. 두 집 살림을 차리고 일주일에 3일씩 번갈았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세워지면서 혼외관계가 정리되었다. 본부인은 잘못한 남편을 용서하고 다른 여자는 본부인과 이혼하고 자기랑 결혼하자고 닦달을 했다. TV에 자문으로 나올 정도인 최사장이 죄를 고백했다. 말씀을 보면 ‘하지말라’가 아니라 ‘하라’이다. 사리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의의 병기로 드리라는 말씀이 중요하다. 도박하지 말라. 바람피우지 말라. ‘말라’해서 구약은 말라기로 끝났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골3:18~19)

. 그런데 주님은 이 땅에 친히 오셔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 닮기로 할 때 죄는 힘을 잃는다.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임을 안다.

오집사 가족은 남편이 연구소를 그만두고 주식에 망해 15년간 언어폭력을 행사했다. 친정아버지는 약사였지만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믿음을 잃었다. 엄마는 예수님을 믿었지만 올바른 말씀이 없었다. 할머니의 포학함에 손을 들었다. 엄마 혼자 서울로 올라가서 화장품 외판원, 채소가게 점원으로 고생하며 사남매를 키우며 술집 여자를 찾아다니는 남편과 이혼키로 결심. 과거 성추행의 기억을 남편에게 고백하고 위로받음. 간증을 나누며 가정이 회복되는 역사를 지켜보았다. 나는 가정의 구원을 위해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워졌다.


(3)말씀대로 누린다.

죄를 드러내고 치유의 삶을 누린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롬6:11)

교회를 개척하기 전, 신대원에 다니던 때 특강요청을 받았다.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내 능력을 내세우며 “나는 이런 큰 고난에서 살아났다”는 인간승리를 내세웠다가 “이제 내 죄를 보기 시작했다“로 바뀌는 것이 믿음의 성숙이다. 죽을 병이나 어떤 고난에서 내 죄가 생각나야 믿는 사람이다. 말씀을 통해 깨닫는 내 죄를 보고, 죄와 싸우기 위해 말씀묵상이 필요하다.


죽은 내가 다시 사는 기쁨을 누린다.

죄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드러남’이다. 죄를 드러내고 고백했을 때 죄의 힘을 잃는다. 감추고 있을 때 죄의 능력이 배로 는다. 내 죄를 내놓고 그 죄와 싸우는 과정을 드러내는 자체가 다른 사람의 죄를 지적하는 것이다. 죄와 싸우며 회개함도 나눔이 필요하다.


“이 일 후에 그 집 주모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왕상17:17)

QT선교회는 창립한 후 북한방문(한민족 복지재단의 초청). 황무한 북한 땅은 숲과 나무는 보기 힘들었고 흙더미뿐, 초라한 평양의 순안공항.가기 전에 명함판 사진 5장을 요구했다. 300여명의 남측 일행을 감시하러 복도마다 감시원들이 지키고 아리랑 축전에 불참한다는 탓에 모든 일정이 취소되고 억류상태가 됨. 이사장 최흥준 목사는 주일예배(붕수교회. 칠골교회)에 묘향산 관광이라니... 복도에서 금식기도로 대신했다.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왕상17:18)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준 까마귀와 그 과부처럼 전혀 뜻밖의 사람에게 아래 QT말씀을 적용하는 예배의 말씀을 드렸다. 주모의 기적은 가루와 기름이 마르지 않음이었다. 300명의 크리스천이 직항로를 통해서 북한을 방문하고 예배드림은, 엘리야가 과부와 아들을 살리심과 같은 기적으로 말씀했다. 과부는 나와 무슨 상관이 있어 내 죄를 생각나게 하냐고, 하나님의 사람인 당신이 왔기 때문에 내게 재앙이 내려 아들이 죽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머무는 곳에 하나님의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에 재앙이 내렸다는 것이다. 아합왕 앞에서 호령했던 엘리야가 여인의 말을 듣고 아이를 침상에 뉘이고, 위중한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겼다.


“엘리야가 저에게 그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취하여 안고 자기의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19절)
과부의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시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북한의 현실 앞에 죽음의 이야기는 내려놔야 한다. 과부가 so내려놓지 못하니까 엘리야가 취해서 안았다. 상황을 해결해 주실 분은 하나님, 그분이 취해서 안아야한다. 하나님의 사람이 찾아온 곳이라면 죽음의 사건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기도해야 한다.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로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20절)

“그 아이 위에 몸을 세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21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려면 구체적인 수고가 따른다. 침상에 누이는 일, 시체를 온기로 덮어주는 일이다. 돈으로 돕지만 따뜻한 사랑과 기도로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22절)

평양 복판 고려호텔에서 아침부터 금식기도하며 죽었던 예배가 살아났다. 고난이 축복이 되었다. 고난은 영적 양식을 공급한다. 지금 억류된 예배가 회복된 곳이 바로 아이가 살아나는 사건이었다.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 어미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았느니라“(23절)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줄 아노라 하니라“(24절) 이 시간, 이 장소에 저희를 억류시킨 하나님은 너무나 옳으시다. 하나님의 능력이 고난가운데 나타나심. QT선교회의 일행 중 의사 한 분이 부인의 소원을 들어주는 셈치고 합류했는데 ”목사님이 엘리야입니다. 저는 죽은 시체였고 아내는 죽은 저를 붙잡고 울고 있음을 알았어요, 북한 와서 지금껏 제가 죽어있었음을 알았어요. 이젠 살아났어요.“라는 고백을 했다.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평양거리의 표어가 예수님만 넣으면 얼마나 성경적일까!


사랑의 빚 이외에는 빚은 지지 않는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13:8)

파출부하는 아내가 남편을 박사과정시키고 버거워하면서도 천사의 살인미소인 정집사는 동네의 재개발로 무허가 30평이44평의 아파트로 들어가는 5억상당의 권리를 얻었다. 맨꼭대기에는 15평정도의 옥탑방이 딸렸으니 큐티모임에도 적격인데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나의 찬송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크기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예수님을 만나면 모든 것이 사랑의 빚이다. 한사람 때문에 지경이 넓어져서 쓰임받는다. 정집사처럼 승리하는 삶을....


환난 중에 안식을 누린다.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마18:32~33)

수련회 강사로 오신 주 변호사에게 중학교 선생인 강집사는 남편의 사업대출건에 물려서 경제사범으로 경찰서에 불려갔다. 경찰서에서는 남편의 두 와이프도 와 있었다. 대출8억을 자신의 월급까지 압류로 대신 갚아야 했다. 평생 갚아도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강집사 학교에 감사가 나와서 월급 차압한 것을 공탁하지 않고 예치금으로 해 놓은 게 위법으로 적발되었다. 큐티에서 기도하고 채권자들 앞에 나가서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요. 예치금 7천만원만 받으시고 빚을 탕감해 주세요...” 그런데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났다. “더 이상은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주 변호사의 설명. 주님은 몇 십명의 채권단 마음을 움직여 주셨다.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한 성취. 죄를 탕감 받는 게 무엇인지 가르쳐 주셔서 감사해요. 내가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신분의식이 있을 때 모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골4:9)

8년간의 끔찍한 환경에서 예수님을 만난 김선생은 고난의 환경에서 건져주심을 감사했다. 골로새서. 빌레몬서의 사랑받는 오네시모는 노예였다. 세상을 저주하던 그가 로마에 가서 주님을 영접했다. 열등감을 극복하고 변화되어 사역을 잘 감당하는 건강한 교회를 확신하며...

바른 지식의 축복을 누린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

25년째 설계사무소를 경영하던 한 집사가 연속극에 등장할 정도로 멋있는 건물의 소유주로부터 견적서를 제출해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조금 비싸게 26억우너의 견적서를 제출했다. 다른 회사의 견적서와 경쟁없이 용역설계비를 확정해주었다. 한참 뒤 회장님과 전무가 참석한 점심시간에 파격적이 제의를 해왔다. 견적서는 낸 금액 그대로 시행하고 회사의 건설본부장 명함을 갖고 추진하며 용역비외의 비용은 별도 지급한단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회장님과 업무 협의할 때 교회일로 월요일 저녁의 제자훈련시간은 빠질 수 없고 정직한 일처리를 설명한 것뿐인데.... 창세기39장의 요셉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는 회장님의 말이 생각나, 낮아진 마음으로 감사했다.


(4)말씀 묵상하는 사람의 여덟가지 축복

복1.하나님과 일대일로 만난다.

사업이 망해서 뇌막염으로 2/3의 뇌를 잃고 쓰러진 분이 6달만에 깨어나서 자기가 천국과 지옥의 환상을 보았단다. 그분이 교회를 그만 두었다. 죽었다가 살아나도 꿈으로 환상으로 지옥과 천국을 보아도 믿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내 이성과 지혜로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는 것이다. 예수님은 ‘보지않고 믿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20:29)

하나님을 알기위해 신비한 경험을 바라는 것은 미성숙한 것이다. 천국과 지옥을 안보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한다면 남들이 어떻게 말씀하시는 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내 삶의 고난과 사건에 대해 주님은 어떻게 말씀 하시는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똑같은 말씀도 각자 깨닫는 것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복2.신앙이 자립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1:1)

욕쟁이 할머니는 “다시는 욕하지 말아야 겠다”고 적용하고 나 같으면 “하나님 말씀 먼저 깨달았다고 교만하지 말아야겠다“고 적용하는 것이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에게 복이 있는 것이지 어느 모임에 가야 복 받는다고 하지 말고 이젠 자기 것으로 만들어 자립신앙을 가져야 한다. ‘예언’이란 ‘미리주신 말씀’의 뜻도 있지만 ‘맡긴 말씀’이란 뜻도 있다. 혼자 은혜받고 그만이기보다 남들에게 보여져야 한다.


복3.율법 신앙에서 놓여난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133:1)

예수님이 오셔서 율법을 폐하듯 율법아래 있는 신앙에서 복음신앙으로 바뀌어야 한다. 스스로 율법을 만들어 내어 얽매이고 나와 다르면 비판하는 마음이 생긴다. 율법은 스스로를 정죄하고 남의 죄도 용서 못한다. 복음아래 있으면 내 죄의 뿌리를 보고 ‘저것이 내 모습이구나‘한다. 매일 번제.화목제를 드리는 열심있는 신앙생활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부패하였도다‘ 하신다. 산위에서 모세와 말씀하신 하나님은 땅에서의 아론과 백성들의 행동도 보고 계셨다. 부패하고 목이 곧은 백성에게 내려가라고 하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며 그것에게 희생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출32:7~8)

깊은 죄의 뿌리를 날마다 내 마음 밭에서 캐내어 버리는 일, 분명히 아침에 캐내어 버렸는데 하루만 지나도 무성하게 솟아오르는 잡초처럼 우리는 날마다 내 마음을 말씀의 호미로 일구어야 한다.


복4.기도가 응답된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

기도응답을 받으려면 평소에 친밀한 것이 최고이다. 평소에 말씀보고 기도하던대로 하면 된다. 평소 자기 사정만 실컷 쏟아놓는 사람은 대화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기도는 일방통행이 아니다. 기도할 때는 하나님의 마음과 사정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에 모른척하다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조르는 사람은 상대방 마음을 모른다. 무조건 자기 말만 외치고 중언부언하는 것은 제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함께 생활하려면 각오와 희생이 필요하다. 남의 집을 방문해서도 습관처럼 기도해야 한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회개기도를 먼저 하고 내 죄를 고백함을 잊지 않아야만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다 주신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6:18)

시마다 때마다 무시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알려주신다. 수많은 전쟁을 치른 다윗은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였다. 자나 깨나 기도하며 묻는 가운데 기도의 응답을 체험할 수 있었다.


복5.전도가 저절로 된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계1:2)

평신도로서 추도예배를 인도하러 갔다. 친척일가가 모인 자리에서 구원초청을 했다. 어떻게 예수 믿어서, 어떻게 달라졌나를 얘기하는 것이 전도다. 자신이 본 역사를 증거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도이니 우리가 겪은 예수를 증거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이다. 내가 전도하지 못하는 것은 삶에서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말씀으로 삶의 고난을 이겨내면 그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도가 된다.


복6.예배의 감격이 되살아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이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이제로부터 영원히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의 축도가 끝나면 ‘예배 끝’이라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예배가 끝난 뒤에 비로소 진정한 영적인 예배, 산제사가 뒤따라야 한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전6:19)

입으로만 교회에서만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온 인격과 삶을 주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를 원하신다. 내 삶의 공간에 주님이 머물도록 해야 한다.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된 것이다.


복7.자녀가 살아난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살후1:5)

삶에서 나를 죽여 주님께 산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예배가 결국은 생활예배로 가야 한다. 몸이 움직일 때마다 믿음의 실체가 드러나 보이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비싼 반지만 보내고 직접 만나러 오지 않으면 거짓사랑이듯 내 몸으로 증거해야 한다.

자녀의 육적 뒷받침은 한계가 있다. 신앙교육만이 중요하다. 어려서부터 쓴 뿌리가 자라지 않게 해야 한다. 어린아이들은 큐티적용이 빠르지만 어른들은 잘 안된다. 어릴 때 신앙생활한 아이들은 어려움을 만날 때 주일학교, 엄마의 성경말씀을 기억하며 교육보험을 든 것 같은 축복이 있다.


복8.소그룹 모임이 살아난다.

구역모임이 일개 사교모임으로 전락했다는 걱정도 나온다. 내가 사랑을 가지고 말씀전하면 상대도 하나님말씀으로 받는다. 사랑이 없으면 ‘말씀의 검’이 ‘상처입히는 칼‘이 되고 만다. 듣기만 해도 숨막히는 원칙만 내놓는 것은 나눔이나 중보가 아니다. 나눔에 중점을 두고 상대방의 눈높이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셨다. 교양과 위선의 껍질을 벗고 부끄러움을 고백하고 죄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2. 복(福)있는 사람의 8복 큐티법

(1)말씀으로 부르심을 믿는다.

말씀대로 되는 인생.


“제 삼십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여호야긴왕의 사로잡힌지 오년 그 달 오일이라 갈대아 땅 그발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겔1:1~3)

내 나이 30, 시집살이에 사로잡힌지 5년, 내게도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다. 친구 만나러 외출했다가 심한 야단을 듣고 집을 나왔다. 기도원에 머물면서 눈물로 회개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4:18)

강대국 바벨론의 그발강은 하나님 없이도 풍요로운 것 같은 곳이지만 포로로 잡혀간 에스겔에게는 너무 힘들어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되는 곳이었다. 잘나가는 남편집안에서의 내 결혼은 그발강가였다. 잡혀간 에스겔과 4대째 모태신앙인 나에게 하나님은 오셔서 내 삶을 인도하셨다. 남편 장례식 때 간증한 것이다.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열조가 내게 범죄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나니”(겔2:3)

에스겔에게 사명주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찾아가라고 하셨다. 믿는 집안의 우리 가족들 앞에서 제일 먼저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에스겔의 삶을 꿈꾸며....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찌니라”(겔2:4~5)

자신의 삶으로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벙어리가 되고 줄에 동여맴을 당하고 쇠똥으로 떡을 구워먹은 에스겔,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도 기뻐하며 명령대로 따랐던 에스겔. 살아생전에 솔로몬 성전 같은 화려한 성전은 짓지 못했지만 마지막 48장의 천국성전을 짓듯이 내 삶에서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천국성전을 누리고 있다.


말씀으로 사건이 해석된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롬9:3)

남편과 외식하기로 한 토요일. 남편 병원의 간호사에게서 남편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보! 기도해줘“라는 남편의 말에 얼마나 감격했던지, 내 믿음을 알고 기도 부탁한 남편이 반가웠다. 남편의 아버지는 장로였으나 이튿날 그는 산부인과 의사로서 주님께로 돌아오지 않던 모습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남편은 떠나기 전 ”이제 예수 실컷 믿겠네!”라며 내 곁을 떠났다. 골육친척의 구원을 원했던 바울처럼 내 생명대신 남편의 구원을 원했던 나는 이일로 인해 눈물로 감사드렸다. 이제 주님을 영접한 남편을 왜 하루만에 데려가셨을까? “하나님, 너무 불공평합니다....“하고 왜? 왜? 하나님께 묻고 싶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눅22:39)

습관을 따라 이 말씀을 “남편의 시신 앞에서” 펼쳤다. 하나님은 이미 남편의 죽음을 아시고 내 질문에 대답해주셨다. 이 말씀을 통해 남편의 구원을 확증해 주셨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18:23)

하나님은 의인이 ‘한가지 악’을 행하고 죽은 것도, 악인이 ‘한가지 의’를 행항고 사는 것도 모두 공평하단다. 믿는 집안의 아들로 성실했던 남편이 예수를 믿지 않는 한가지 악을 행했지만 이제 그리스도를 영접했으니 ‘그 한가지 의’로 살아났다고 확인해 주셨다. 과연 하나님은 공평하셨다.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찌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 만일 의인이 그 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인하여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인하여 죽는 것이요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법과 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겔18:25~28)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주일학교 교사를 당분간 쉬기로 했다. 남편의 죽음은 구원사건이기에 슬퍼하지 않고 기뻐해야 옳았다.


내 고통을 열어 보인다.


“인자야 내가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번 쳐서 빼앗으리니 너는 슬퍼 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말며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종용히 탄식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우지 말고 사람의 부의하는 식물을 먹지 말라 하신지라 내가 아침에 백성에게 고하였더니 저녁에 내 아내가 죽기로 아침에 내가 받은 명령대로 행하매”(겔24:16~18)

아침에 백성에게 고하고 저녁에 에스겔의 아내를 데려가신 것처럼 주님은 하루 만에 남편을 급성간염으로 데려갔다. ‘네 눈에 기뻐하는’ 아내는 눈물 흘리지 말라고 하신다. 주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가장 합당한 때에 주셨다. 아내를 잃는 고난당한 에스겔. 남편의 죽음을 통한 표징. 새파랗게 젊은 과부 타이틀을 달았지만 낙망하지 않았다. 주님과 나만 아는 구원의 비밀 때문이다. 비밀을 선포하는일에 내가 쓰임받기를 원하신다. 아버지 잃은 내 아이들의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재수쟁 큐티를 통해 대학부에서의 소외감을 위한 큐티가 사역의 출발점이 되었다. 매주 40~50명의 모임이 자리를 잡자 14년 뒤 부흥하는 교회의 모범을 보이는 개척이 이루어짐.


“그 날에 네 입이 열려서 도피한 자에게 말하고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리라 이와 같이 너는 그들에게 표징이 되고 그들은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겔24:27)

1989년 미국의 동부, 서부로 피아노과 교수들(서울예고, 총신대)이 연주여행을 떠났다. 바울이 배타고 로마로 갈일이 생긴 것은 죄수의 몸으로 공짜로 배타고 복음 전하러 가게 된 것을 기뻐했다. 말씀을 적용해서 출발한 연주여행이었다. 교회성가대와 피아노 반주자로 봉사하는 일행이 많았다. 나는 교수님 사이에 성령의 불을 붙이고 싶었지만 내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날 밤 이상하게도 선생님들 사이에 분쟁이 생겼다. 연주일정을 짜는데 동부로 가느냐, 서부로 가느냐, 입씨름이 붙었다. “그때 다들 그만 하세요. 말씀이나 들어봅시다“ ”하려면 짧게 해라. 무슨 성경말씀이냐 하는 목소리들이 쑥 들어가고 조용해졌다.” 시집살이하며 고작 걸레 뒤집는 생활이며 장로아들인 의사 남편 만나서 돈천원이 없어서 먹고 싶은 것도 사 먹지 못하고 이혼결심ㄴ하고 가출. 기도원 올라간 일, 교회반주하면서 예수님을 만났다고 울면서 간증했다. 밤늦도록 교수님들은 두시간째 내 간증을 듣고 있었다. 서부의 플러싱교회에서는 연주회대신 내 간증을 듣기로 했다. 1천명이 넘는 사람이 밤10시부터 12시반까지 경청해 주었다. 간증을 마쳤을 때 <11시에 만납시다> TV프로그램의 사회자인 김영호 아나운서가 복음방송에 출연해달라고 했다. 몇 군데서 간증을 더하게 되었다.


말씀을 온전히 의지한다.

“우리의 배 타고 이달리야로 갈 일이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사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행27:1)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눅12:49~50)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눅12:51)


말씀 앞에 핑계를 대지 않는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약1:1~3)

연주여행을 다녀온 뒤 내가 출석하는 홍정길 목사님(남서울은혜교회)이 1990년 COSTA에 초청해 주셨다. 홍영길,하용조,김진홍,이동원,오정현,송인규 목사님 등 유명한 목사님과 짜여진 집회에서 집사가 초청된 것이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1:25)

강의일정표에슨 딱1시간이 주어졌다.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난 이야기를 미국의 흩어져있는 지체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주님은 말씀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가 행하는 자라고 하시네. 과부의 입장이 되어본 내가 환난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싶었다. 내 우상인 교양을 내려놓고 아쉬운 내색조차 싫어하던 낸가 말씀을 적용해서 용기를 냈다.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도 형제를 위해 죽자고,,,, 워싱턴 지구촌교회(이동원목사). 남가주사랑의 교회(오정현목사)에서 하루종일 큐티간증을 했다. 주일학생들이 강남의 40평 아파트에 사는 나를 보고 “예수님을 제대로 믿어야 한다면서, 이렇게 좋은 집에 살수 있나요?”하고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1:27)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요21:3)

피아노공부를 했던 친구들이 유학을 마치고 하나둘씩 귀국하는 모습을 보니까 ‘빨리 공부하러 갔다 와야지’하는 조급한 마음에 주님의 일은 미뤄놓고 베드로처럼 ‘빨리 물고기 잡으러 가야지‘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앞으로 할 일은 피아노라고 생각했다. 남편의 구속가운데서도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다. 주님의 인도하심없이 내 열심만 하늘을 찔렀다. 날밤을 새면서 피아노공부를 해도 아무 소용없고 남편이 절벽같이 길을 막고 서서 연주회나 레슨도 못하게 했다. 내 곁에 예수님은 서 계셨지만 나도 제자들처럼 예수님은 보지 못했다. 물고기. 피아노에만 관심이니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는지라”(요21:4)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요21:5)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요21:6)

정확하게 인도받지 못하고 그물을 던졌다가 피아오 연주자의 삶을 포기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즐거운 인생을 사는 길을 깨달았다.

남편이 나를 뒷바라지 해 주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내게 피아노를 버릴 마음을 주셨다.


주님의 부르심에 따른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저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을 십 오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이사야가 가로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종처에 놓으니 나으니라”(왕하20:1~7)

1995년 종합진단에서 종양을 발견했다. 주님 앞에 울면서 매달렸다. 1991년 3월 큐티(말씀묵상)특강을 부탁받았다.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겔3:3)

날마다 말씀을 조금씩 씹어먹어서 소화하여 새로운 조직으로 나가는 운동. 성경이 꿰뚫어지는 축복을 누릴 수 있었다. 말씀이 일상생활과 연결되어지면 그 말씀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하나님이 사건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날마라 들으며 삶속에서 자신을 부수면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된다. 결국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된다.


주님의 은혜를 체험한다.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마21:2~3)

큐티모임에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큐티선교회 창립예배를 가지다. 곧 바로 홈페이지 사역이 시작되었다. 말씀으로 승리한 사건을 홈페이지에 올려 복음을 전하는 선교를 이루다. 나눔을 읽을 때마다 말씀을 간구하는 이들이 많음을 알고 감사했다.


큐티보다 삶이 중요하다.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짜온대”(막5:32~33)

예수께 다가오지 못했던 혈루증 여인처럼, 과부라고 사람들에게 막혀서 눌려있던 나를 예수님은 둘러보셨다. 성중에 돌아다닐 수도 없고 남을 만져서도 안되는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으로 인해 자유함을 얻었다. 내가 젊은 날의 시집살이와 남편 죽은 이야기로 얻은 유익이 무엇일까? 집안 망신만 시킨 건 아닌지 간증하기가 싫은 때도 있었다. 간증을 듣고 나를 무시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생각지 못한 곳에서 인정받는 일도 생겼다. 신학전공도 안한 사람이란 따가운 시선도 있었다. <교회개척을 위한 준비예배>: 1999년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말씀을 아는 것과 말씀에 순종해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분명 다르다. 말씀을 사모해서 모이는 것에만 그치지 말고 말씀으로 삶을 나누는 건강한 교회의 모범을 보이고 싶다.


말씀에 꽂혀 산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암몬 족속을 향하여 그들을 쳐서 예언하라 너는 암몬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성소를 더럽힐 때에 네가 그것을 대하여, 이스라엘 땅이 황무할 때에 네가 그것을 대하여,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에 네가 그들을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도다”(겔25:1~3)

에스겔 1~3장(에스겔에게 소명을 주심). 24장까지는 (이스라엘을 향한 예언). 25장부터는 이방민족(암몬,에돔,블레셋,두로,애굽)을 향해 외치라. 영적 이방민족인 불신자들을 향해 ‘주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신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11:17~19)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21:18)

아브라함은 이삭을 내놓는 훈련을 받았다. 주님은 내 속의 이삭을 내놓으라고 하셨다. 이스마엘을 내보내고 헌신했다고 하지말라. 큐티교회개척을 결심하다.


(2)말씀으로 순종을 배운다.

영혼 구원에 온힘을 쏟는다.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30)

14대째 유교집안인 친정아버지가 암으로 입원. 먼저 돌아가신 3대째 기독교 집안인 어머니의 기도가 이루어졌다. 내가 남편을 떠난 후 간증을 시작했을 때 ‘집안 이야기‘를 그만 하라고 하셨다. 교회개척후 일주일 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장로가 되어서도 늘 언쟁이 있었던 아버지지만 이 땅에서 백배나 넘는 축복을 누리고 계셨다. 어머니는 눈물로 기도하며 침묵의 열심으로 아버지를 구원하셨다. 나는 하나님의 열심을 닮은 어머니의 열심을 보며 배웠다.


천국 성전을 짓다.


“인자야 너는 얼굴을 남으로 향하라 남으로 향하여 소리내어 남방들의 삼림을 쳐서 예언하라”(겔20:46)

학교식당을 빌려 예배드린다. 성막예배당을 짓는 마음의 자세가 남다르다.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천국성전이 되기를 소망한다. 건물을 짓지 않고 그 돈으로 선교하고 구제하고 북한을 돕는 일에 쓰겠다. 대치동의 남쪽에 있는 휘문고등학교. 자녀교육이 우상인 강남 한복판에 ‘우리들교회’를 붙여주셨다. 2만평의 땅을 씀.


주님의 계획을 날마다 확인한다.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으로 말미암아 전으로 들어가고 성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 뜰에 들어 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겔43:4~5)

휘문고등학교의 문이 동문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교회오시는 분들은 빚지고 원통하고 환난당한 분들이 많다. 형편없는 여리고 기생 라합이 200만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열었듯이 이 교회가 한국교회의 개혁을 위한 디딤돌이기를 소망한다. 사랑과 기도의 공동체 되기를 주님 앞에 날마다 간구한다.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히11:10)

 

하나님의 사정을 이해한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2:11)

개척교회 후에 처음 있는 ‘한가족 운동회’날에 비가 내린다. 하나님 사정으로 오는 비를 보고 내 사정만을 앞세워서는 안된다.

장소를 운동장에서 지붕있는 복도 밑으로 변경했다. 천국잔치하며 교회 식구들이 거의 붙어다니며 부대끼는 정이 컸다.


하나님이 주신 역할에 순종한다.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찌니라”(딤전2:11~12)

창조의 순서는 남자가 먼저인데, 범죄의 순서는 여자가 먼저라서 순종의 역할을 여자에게 주셨다. 성경은 분명 여자가 먼저 범죄했음에도 ‘아담 한사람 때문에‘ 죄가 들어왔다고 말한다.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딤전2:13~14)

주님은 남성에게 책임을 물으시면서 남자들은 창조질서에 입각해서 약한 여자를 귀히 여기지 않으면 영적 기도가 막힌다고 함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7)

하나님은 인간세계와 하나님의 경륜을 위해서 계급의 질서를 주셨다. 예수믿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역할을 찾는 것이다. 여자에게는 자녀양육으로 부드러운 역할을 주셨다. 내게 주신 역할에 순종하라는 말씀. 25녀간 서리집사로 섬기다.


큐티의 결론은 감사이다.(골26:~7)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말씀으로 삶이 회복됨을 믿고 있다. 내게 맡겨주신 삶에 감사한다.


말씀이 내 삶의 자서전이라고 고백한다. (롬8:5~6)

육신의 쫓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쫓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사망의 생각은 막대기와 같아서 아무리 높이 던져올려도 떨어질 수밖에 없고, 생명의 생각은 새와 같아서 아무리 낮게 던져도 창공을 치고 올라갈 일 밖에 없다.


말씀으로 삶이 형통한다.

복있는 사람의 8복 큐티1(수1: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수1:1)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모세가 죽은 후에“, 신명기 마지막의 모세는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함. 민13장(겁에 질린 정탐원들), 민20장(물이 없다면 죽음을), 죽음에 순종한 모세는 아름답다.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하나님이 이럴 수가...” 하면 모세가 가나안 입성의 걸림돌 밖에 안된다. 진정한 리더십은 내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내 앞에 놓인 길을 열심히 걸어갈 때 내 뒤의 사람이 저절로 끌려오는 것이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수1:2)

1장에는 “모세가 죽은 후에” 라는 말씀이 7번 나온다. 모세의 영향력은 상상보다 큰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백성들의 마음과는 달리 모세를 데려가셨다. 사명이 끝났기 때문이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수1:3~4)

맨발은 종의 표시였다.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다주겠다는 약속. 대장이 지휘하는대로 열심히 따라가는 발바닥인생에게는 내 계획은 없고 하나님의 가라‘고 하시는 대로 요단강 궂은 물길도 ’예‘하고 건널 뿐이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수1:5)

천부장도 아니고 백부장도 아니고 대제사장도 아니고 ‘모세의 시종‘ 여호수아였다. 여호수아는 애굽종노릇 40년으로 인생을 보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을 섬기는 것’이 지도자의 자질이다. 종의 마음이야말로 지도자의 덕목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롬1장)이라 했다.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수1:6)

생사여탈권이 전적으로 주인에게 달린 종, 새 한 마리값도 안되는 무력한 존재가 ‘하나님의 종’으로 불리는 것은 축복이다. 생색내지 않고 섬기는 자이다. “걱정하는 것의 40%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 일, 30%는 이미 지나간 일, 12%는 우리와 상관없는 일, 10%는 질병에 관한 걱정, 8%만이 정말 걱정할만한 일”이란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수1:7)

모세는 40년동안 광야에서 양치기하며 홀로 훈련받았다.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건너야 할 요단이 있다. 건너기 힘든 영적 요단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1:8~9)

평탄하게 닦인 길도 가진게 많으면 무거워서 기우뚱거리고 없으면 가벼워서 쉽게 간다. 다위이 전쟁에 승리해서 왕국을 세우고 신나게 춤춤녀 언약궤까지 되찾아왔으나 사탄의 격동으로 인구계수(대상21)로 온역으로 7만명이 죽다.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가서 예배드리라‘는 하나님의 생활예배를 드리는 삶의 현장인 타작마당임을 깨닫게 하심. 죽음을 겪었을 때 처방은 생활예배를 잘 드리는 것다.


(4)말씀으로 삶이 달라진다.

복있는 사람의 8복 큐티2


“다윗의 시대에 년부년 삼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 집을 인함이니 저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삼하21:1)

예수님의 조상 다윗의 인생은, 인생 또한 어쩔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는다. 내 자신의 질긴 죄성을 인식하지 못하면 사람이 변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밧세바 사건, 압살롬의 반역, 세바의 반역도 끝나고, 온갖 고난을 다 겪은 다윗도 기근까지 찾아왔다. 사람막대기와 인생채찍과 빵없는 고난고 당했다.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저희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저희 죽이기를 꾀하였더라 이에 왕이 기브온 사람을 불러 물으니라 다윗이 저희에게 묻되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삼하21:2~3)

가나안에 입성한 뒤 이방민족들을 차례로 물리쳐 가던 중에 기브온사람들은 항복과 화친을 요청했다.(수9) 그들은 종노릇을 자청했다. 그런데 사울이 민족주의를 내세워 그들을 강탈했다. 사울의 열심이 지나쳐서 하나님을 앞서 간 것이다. 토지와 재산을 강탈한 죄가 기근을 불렀다.


“그러나 다윗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사이에 서로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한 것이 있으므로 왕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 이에 아야의 딸 리스바에게서 난 자 곧 사울의 두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과 사울의 딸 메랍에게서 난 자 곧 므홀랏 사람 바실래의 아들 아드리엘의 다섯 아들을 잡고 저희를 기브온 사람의 손에 붙이니 기브온 사람이 저희를 산 위에서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매 저희 일곱 사람이 함께 죽으니 죽은 때는 곡식 베는 처음날 곧 보리 베기 시작하는 때더라”(삼하21:7~9)

사울에 대한 복수로, 기브온 사람들이 사울의 자손들을 죽이려고 내어달라고 했을 때, 다윗은 요나단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사울의 절룸발이 아들 므비보셋은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사울의 첩 리스바의 아들 2, 손자 5은 한날 한시에 목매어 달리는 죽음을 맞았다. 나무에 달려죽은 자는 저주받은 자나 언약을 파기한 자이다. 다윗의 손대신 기브온 사람을 통해 그들을 처리하셨다. 죽은 때가 곡식베는 처음 날, 즉 추수하는 날이다. 기근이 끝나리라는 조짐이 보인다.


”아야의 딸 리스바가 굵은 베를 가져다가 자기를 위하여 반석 위에 펴고 곡식 베기 시작할 때부터 하늘에서 비가 시체에 쏟아지기까지 그 시체에 낮에는 공중의 새가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범하지 못하게 한지라“(삼하21:10)

사울의 첩 리스바는 미모 때문에 군대장관 아브넬이 이스보셋에게 그녀를 달라 한일로 분쟁이 발생하고 아브넬이 등을 돌리고 다윗에게 가버렸다. 기구한 리스바는 남편사울도 잃고 나라도 흔들리게 한 인생. 아들 2,손자 5도 고향 기브아에서 죽었다. ‘굵은 베’로 죄를 회개했다. 6개월간 새와 짐승으로부터 시체가 보호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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