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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so what?
글쓴이 이덕관 E-mail 번호 12
날짜 2008-06-05 조회수 1354 추천수 84

"그래서 어쨌다는 것이냐?" 요즘 청년들이 못난 사람의 설교를 들으면서 고민하고 있는 문제 중 하나이다. 나 또한 오랫동안 고민했던 문제이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고민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so what?"의 문제가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올린다. 사랑하는 청년들이 이렇게 고민하는 이유는 나의 설교 형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청년들이 알다시피 나의 설교는 "so what?"이라고 외치게 하는 소위 "적용"이라는 "삶의 구체적 지침"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해서 이루신 일들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어떻게 하늘의 질서로 완성되고, 성취되었는가하는 것과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아들 예수로 말미암아 부름받은 복음의 영광과 부요한 아들의 생명을 얻은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는 것으로 대부분 끝을 맺는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부요함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청년들은 "so what?"문제를 제기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역사와 생명의 부요함은 알겠는데,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말씀의 적용이 삶에서 이루어지도록 "구체적인 삶의 지침"을 달라는 목소리다.

내가 청년들에게 구체적인 삶의 지침을 말하는 않는 것은 다음의 몇가지의 이유에서이다. 첫번째 이유는 나는 소위 말하는 "삶이 적용"이란 구체적인 지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자"로 부르신 그 영광스런 부름에 "아이"로 남아있겠다 하는 처사라 생각한다. 장성한 자에게는 어린 아이와 같은 삶의 구체적인 지침을 그 부모가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장성한 자는 그 부모가 그를 동등한 인격자로 대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서 장성한 자가 부모가 구체적으로 준 삶의 지침이 없다고 해서 자신의 행동을 방종에 이르게 한다면 그는 성인아이일 뿐이다. 장성한 그는 성인됨의 성숙한 판단으로 부모를 기쁘게 하는 삶과 가정을 온전히 세우는 인격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장성한 자의 인격이다. 야고보사도는 우리에게 주신 율법을 구약의 백성에게 준 것과는 달리 "자유의 율법"이라 부르고 있다. 이는 우리를 마치 아이와 같은 구약백성처럼 부른 것이 아니라 성인으로 불렀다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성령안에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도바울도 영광스런 교회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러나 그것은 저들에게 장성하지 못한 아이를 대하듯 교훈하는 말이 아니다. 새로운 도덕적 윤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하는 율법을 지키는 장성한 자로 부름 받은 저들이 보여야할 마땅한 바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두번째 이유는 우리의 인격은 구체적인 도덕적 목록을 적어 준다고 해서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이다. 우리의 인격은 우리에게 그 아들의 얼굴 빛에 비추신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할 때만 변한다. 우리가 도덕적 교훈을 통해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변한다면 초등학생시절을 지나 중학생때면 완성되어야 했다. 인질범들이 경찰과 대치하는 영화에서 고전판을 보면 영락없이 그 어미가 출현한다. 경찰서장이 아무리 사회적규범과 도덕적 교훈을 말해도 그의 극악함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미가 저를 얼마나 사랑하여 저를 귀히 여기며 키웠는가에 대한 사랑에는 그 가슴이 무너진다. 왜냐하면 어미의 사랑과 대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죄를 멀리하는 것도 그러하다. 죄의 목록을 기록하여 외운다고 해서 죄를 멀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죄를 이기는 방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격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사랑을 부으셨는가 그 사랑과 대면할 때만 변한다. 난 청년들이 그 사랑과 깊이 대면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세번째 이유는 이것이다. 불타는 사랑에는 사랑의 기술을 코치할 자를 필요치 않는다. 그것은 귀찮은 간섭일 뿐이다. 한 사람을 사랑하면 모든 삶이 그 사람을 향한다. 그의 온전한 지배에 있다. 심장은 그를 향해 뛰고, 그의 손은 사랑하는 자를 향한 선물을 들었고, 그의 발걸음은 그에게로 항상 향한다. 보고있어도 보고싶다. 그는 사랑의 대상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발견한다. 그리고 그 사람의 요구는 항상 행복하다. 요구치 않는 것이 섭섭하다. 실망스럽다.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면 삶의 자세가 나온다. 우리의 삶의 모든 모습이 다르다. 다른 환경에서 똑같은 삶의 지침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 사랑하면 어떤 사랑이든 사랑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 사랑이 어리다 하여도....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것이 내가 청년들에게 주는 "so what?"에 대한 대답이다. 난 청년들을 아이처럼 대우하고 싶지 않을 뿐 아니라 그대들을 할 수 있는대로 그리스도의 영광의 부요함으로 인도하고 싶다. 그리고 그를 향한 뜨거운 사랑의 사람들로 세우고 싶다. 아이를 키우는 방법이 엄하기도하고, 부드러울 수도 있다. 어쩌겠나? 그대들은 엄한 부모와 같은 사람을 만났으니...^^


이태성 모르고 계셨죠? 사실은 많은 사람이 목사님 설교에 은혜를 받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 저는 최근에 와서야 '아이'에서 약간 자란 것 같습니다. 저도 요즘은 목사님 말씀 은혜 받을 줄 '안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지요. 그리고 그럴 때 은혜 받았다고 할 겁니다. 요즘은 들어야 할 말씀을 듣고 있답니다. 그리고 자기 만족의 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은혜가 있습니다 2008-06-05 삭제
이덕관 집사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 - 그것이야 말로 모두에게 큰 영광입니다. 모든 시간 시간마다 그 은혜가 집사님과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은혜" 집사님의 글에는 언제나 마음을 감동시키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2008-06-05 삭제
김진철 목사님 설교를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So what"이 아니라 "So hot"입니다.(요새 원더걸스 신곡 제목이라는;;;) 예전에 설교를 들을 땐 당장의 감격과 위로에만 급급할 때가 많았는데 목사님 설교를 통해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아 기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잘 키워주세요. ㅎㅎㅎ 세미나 잘 다녀오시고 항상 화이팅입니다! ^ㅡ^ 2008-06-09 삭제


me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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