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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안의 교육관 복구공사
글쓴이 이태성 E-mail godbelove@naver.com 번호 32
날짜 2013-01-17 조회수 894 추천수 61
첨부파일   내 안의 교육관 복구.hwp(32768 byte)  

 

 두 달 넘게 해오던 우리 교회 교육관(敎育館) 복구공사가 이제 마무리가 되는 것 같다. 외적인 건물의 복구를 바라보면서 나는 내적인 진정한 의미의 교육관(敎育觀) 복구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교육관 건립의 목적과 정신에 대한 물음이다. 더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양육하고 있는 아이들을 어떤 입장에서 바라보며 어떤 방법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2005년에 교육관이 세워진 이후부터 교육관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끊임없이 있었다. 마치 보수와 진보의 대립처럼 교육관 운영에 있어서도 안전과 개방의 대립이 내 속에서도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였다. 내 자신이 이론가, 비판자 입장에 있을 때는 개방을 생각하고, 책임자, 실무자 입장에 있을 때는 안전을 염려하였다. 이번에 교육관 주차장 화재로 인한 학습효과에 의해 교육관이 너무 폐쇄적으로 운영될까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교육관 출입과 관리에 대한 시스템을 마련하여 적절한 수준에서 교육관을 개방하자는 취지의 제안서를 써서 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확히 말하기 힘들다. 끝없이 교육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상황에 따라 강조점이 다를 뿐이다. 예전에 학교 개방을 위해 허물었던 담장을 최근에는 다시 아동의 안전을 강조하며 학교마다 담장을 쌓고 있는 것이 교육에 대한 우리의 고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교육에 대한 단순하고 명쾌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한편으론 교육에는 정답이 없다고 하고 또 한편으론 모두가 교육에 대한 전문가인 양 목소리를 높인다. 그 틈 사이에서 교사는 마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듯 하며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다.

 세상은 수많은 상대적 가치들이 뒤섞여서 시류나 사조의 파도를 우리 발아래에 풀어놓으며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반복을 하고 있다. 변하는 세상, 혼란의 세상에서 불변하는 진리, 단순한 대답은 없는 것인가?

 15년 전쯤에, 고민 많던 신참 교사 시절에 읽었던 책 한 권을 최근에 책꽂이에서 뽑아 읽고 있다. [이렇게 가르치셨다](매트 프리드만, 파이디온 선교회)라는 책이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교육 문제에 대하여 다시 본질로 돌아가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가르칠까 하고 묻는 책이다. 예수님의 교육 방법을 연구하며 저자가 찾아 놓은 답을 우리 주일학교 선생님들과 밑줄 긋기 형식으로 공유하고자 한다. (올해 나는 고등부 교육팀장이라는 특별한 직분을 덤으로 얻었다.)

 

 제 1장 탁월한 교사, 예수님

 

* 스탠리 존스(유명한 인도 선교사)는 자신의 내적인 상태가 선교사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했다. 그는 "이 일은 나에게 벅차다. 모든 선교 사역을 중단하고 건강부터 회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님 저는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제 모든 것이 고갈되어서 저는 더 이상 계속해 나갈 수 없습니다." -교사 직분을 다시 맡은 우리의 고백이기도 하다

 

* 그때 하나님은 "네가 그 문제를 염려하지 않고 나에게 맡긴다면, 내가 그 문제를 책임지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는 "주님, 그렇게 하기를 원합니다."라고 간절한 심정으로 응답했다. 존스는 변화되었다. 지쳐 있었던 사람이 이제는 지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그 후부터 그의 사역은 놀라운 능력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였으며, 성령의 감화를 받은 그의 설교와 저작들은 오늘날에도 우리 귓가에 메아리치며 울리고 있다. 후에 존스는 자신의 생애에 있었던 놀라운 방향 전환은 그가 부름 받은 소명의 단순성을 깨달았을 때 찾아왔다고 회상한다. -교사로서 우리 소명의 단순성은 무엇인가?

"그때 나는 이제는 논쟁을 줄여야 한다는 것과 다시 그리스도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서야 나는 불신자들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복음은 예수님의 인격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정리 되었던 것이다." -그래! 바로 이거야!

 

* 나는 오늘날 크리스천 교사들에게도 존스와 똑 같은 방법을 취하라고 권하고 싶다. 여러 교육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수많은 방법들로 인해 혼란스런 우리는 탁월한 교사이신 "예수님께 눈을 돌려야 한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가르치실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부합되도록 우리의 인격과 목표, 방법을 맞추어 간다면, 스탠리 존스가 자신의 기도처에서 모든 일이 단순해지고 새 힘을 얻어 일어섰듯이 우리들도 새 힘을 얻어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대학원 자료 조사팀에서 연구하던 때에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 우리는 수업에 도움이 되는 435개의 다양한 방법을 작성했다. 조사를 하면서 더욱 난감했던 것은 방법들 간의 불일치였다. 각각의 방법들이 모두 다 경험적으로 증명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 방법들 간에 서로 맞지 않는 점들이 있었다. ... 연구를 통해 발견되는 방법들은 유동적이며 그 후에 오는 자료들에 의해 더 세련되어지거나 반박된다. 그러나 우리의 교사인 예수님은 영원하면서도 탁월한 본을 보여주신다.

 

* 주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교사들은 특별한 복을 받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가르치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 문화나 과학 기술이 변화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취하신 방법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중세 시대에 번창했던 수도원은 다음과 같은 간단한 말로 하루를 시작했다. "다시 크리스천이 되자." 오늘날 우리 교사도 똑 같이 말해야 한다. "다시 크리스천-그리스도와 같은- 교육자가 되자."

 

우리가 진정으로 복구해야 하는 것은 건물로서의 교육관(敎育館)이 아니라 우리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내면의 교육관(敎育觀)이다. 두 달에 걸쳐 그을음을 제거하며 교육관 복구공사를 했듯 온갖 세상 풍조의 검댕을 뒤집어 쓴 우리 자신의 교육관을 복구공사하자. 예수님의 본을 설계 도면으로 삼아 예수님을 닮은 교사의 모습이 되자.

"네가 그 문제를 염려하지 않고 나에게(하나님께) 맡긴다면, 내가 그 문제를 책임지겠다."

우리도 이 음성을 들어야 한다.

"나는 불신자들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가끔 단지 아이들의 교회 출석률 높이기가 우리의 최고 목표와 가치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하고 회의감이 든다. 도대체 뭐하려고 아이들을 그렇게 불러 모으는가? 우리의 목표는 무엇인가? 다음 2장에서 '예수님의 목표'에 대해 알아본다.




me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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