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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죽음으로 자리에서 마무리하고 시작하고
글쓴이 오영철 E-mail 번호 443
날짜 2019-01-03 조회수 65 추천수 5

 죽음의 자리에서 마무리하고 시작하고

 

연말 연시는 온통 죽음을 생각하면서 보냈다. 갑작스럽게 신학교 학생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20181229, 방콕에서의 팀모임을 마치고 11시간의 운전을 하고 치앙마이로 올라오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르뢔 라는 신학생 3학년이 아침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지난 1227일 신학교 전도캠페인을 마치고 고향에 있는 교회에서 성탄절행상화 연말 연시행사를 위해서 새벽 4시에 오토바이로 치앙마이를 출발했다. 그런데 사거리에서 신호등을 무시하고 오는 차와 충돌하여 뇌에 중상을 입어 이틀 동안 병원에 있다가 오늘 사망했다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 학생의 죽음과 관련된 일들이 우선이라고 생각되어 그 일정에 맞추었다. 30일 마지막 주일 예배는 그 학생의 유족들을 만나기 위해 신학교의 교회로 갔다. 사망신고와 경위에 대한 처리를 위해 그 지역의 목사와 친척들이 그곳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오토바이를 운전하였던 학생 뽀로 는 멀쩡하였다. 몇번 굴렀지만 기적적으로 병원에 입원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다. 그렇지만 그가 받은 정신적 충격과 부담은 엄청났을 것이다. 둘은 어릴 때부터 단짝 친구였다. 신학교도 같이 들어왔는데 마지막 모습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지켜보아야만 했다.

여러 교인들이 그에게 찾아가서 위로해 준다. “너의 책임이 아니다. 부담 갖지 말아라.”

나는 특별히 할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아서 그저 등을 만지고 함께 하여 주었다.

 

장례식이 11일 화요일이어서 2018년도 마지막 날인 1231일 월요일 오전에 장지로 출발하였다. 6시간 운전 동안 동행한 미국선교사 카일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마음속에는 죽음에 대한 한 부분이 계속 남아 있다.

 

오후 늦게 티와타에 도착하니 장례식을 주관하는 암폰목사가 나에게 장례식 설교를 부탁하였다. 무슨 말로 이 상황을 설명하고, 하나님의 뜻을 나눌까 고민을 계속한다.

 

사실 이런 상황에 대한 질문을 한다면 이 대한 답은 나에게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한다. 어쩌면 주님나라 갈 때까지 질문을 가지고 갈 것 같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므뢔에게 꼭 이 세상에서 역할이 있을 것 같기만 하다. 그의 능력이나 성품, 그의 자세나 예비지도자로서 매우 보기 드문 믿음직스러운 신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영어도 눈에 뛰게 잘하고 음악에도 소질이 있었다. 더군다나 그날 새벽에 출발한 것은 친구교회의 성탄절과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기 위해 일찍 출발한 것이다.

 

11일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하고 일찍 장례가 있는 마을로 갔다.

부모님을 만났다. 사실 할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남다른 은사와 태도를 가지고 있던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안타까움을 나눌 뿐이었다.

인도자인 암폰 목사가 오늘은 가해자측 대표자인 태국인들도 온다고 하니 설교를 태국어와 카렌어로 준비해 달라고 한다. 한국어로도 이 상황에서 설교가 어려운데, 두 언어로 하라고 하니 부담이 더 된다.

 

장례식의 모습은 가난한 산골의 초라한 형색이 물씩 풍긴다. 사진들을 보니 대부분 신학생때의 모습이다. 아마도 어릴 때에는 사진을 잘 찍은 것이 없는 것 같다. 태어날 때 가난한 산골에서 태어난 풍족하지 살지 못하다가 이 세상을 떠날 때도 가난한 산속의 마을에 묻힌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불쌍하고 불행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드러난 이 모습이 전부가 아님을 안다.

그것은 슬픔과 이별의 아픔을 넘어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다.

시편 11615절의 말씀을 나눈다. “경건한 자의 죽음은 여호와께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라도.” 이것이 이 상황에 대한 모든 답은 아닐 것이다. 남아 있는 유족과 이 사건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인생의 화려하고 멋지게 살았다고 할지라도 마지막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귀중하지 않다면, 영원한 안식으로의 출발이 아니면 그것은 영원한 안타까움이라는 것이다.

 

그와 친하게 지내던 신학생 에투가 하관을 하면서 마지막 인사편지를 읽는다. 마무리하는 인사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므뢔, 우리의 사랑하는 친구야. 그대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영원한 평안의 주님나라로 갔구나. 천국에서 만나자.”

그렇다. 그의 몸은 죽었으나 그의 삶은 불행하거나 불쌍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로마서 148)”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재는 이 땅에서 나그네이지만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빌립보서 121)”하기 때문이다. 친구의 말처럼 그는 하나님에게 받은 부르심의 자리를 착하게 살다가 본향으로 갔다.

 

남은 유족과 친구들을 위한 과정은 여전히 남아 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하여준다. 찐다라는 교수 가정은 15000(500)이라는 한달 급여 이상의 조의금을 주었다. 일을 처리하고 오고 가는 일정을 위하여 필요하였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신학교에 있는 교회에서도 예배 후에 광고를 하니 적지 않은 조의금이 모아져 전달되었다.

치앙마이에 가서 사건에 대한 처리를 해야 하지만 못 가는 어머니를 위하여 위임장을 준비해준다. 일부는 마지막 가는 므뢔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식장과 음식을 준비한다.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친구 뽀로에 대하여 여러 사람들이 위로를 이어간다. 이런 노력과 헌신이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유족들이 다시 서게 하는데 역할을 할 것이다.

 

므뢔는 19951020일에 태어났다. 우리가 199512 19일에 선교사로 태국에 도착했으니 2개월 전이다. 23세를 살다가 갔다. 나의 선교사로서의 삶과 같은 인생을 살았기에 나를 더욱 돌아보게 된다.

오래 풍족하고 건강하게 사는 것은 사람의 원함이지만, 더 큰 소망과 삶의 자리가 있다. 그것은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이고 죽는 것도 유익함의 자세로 사는 것이다.

23세의 청년 르뢔는 그렇게 살다가 그런 기억을 남기고 갔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나에게 그 사건에 대한 질문을 남기고 있지만, 영원한 소망과 부르심의 자리가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드러내주었다




me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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